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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주식고수들의 이야기

투자의 고수 피터린치 일대기

by 메타세콰이어s 2020. 5. 5.

투자의 고수 피터린치 일대기

 

오늘은 책 월가의 영웅으로 알려진 피터린치를 통해서 주식을 배우는시간을 가져볼께요

피터린치는 월스트리트 사상 최고의 펀드 매니저로 뽑힙니다

1977년부터 1990년까지 13년간 피젤리티의 마젤란펀드를 운영하며 누적수익률 2700% 연평균 복리수익률 29.2% 기록하며 13년간 원금에 28배 수익을 거두며 투자업계의 전설로 등록합니다. 1977년 천만 원을 마젤란 펀드 투자 했으며 그 돈이 1990년 2억8천만원이 되어 있다는 것인데요.


피터린치가 13년간 마젤란펀드 운영하면서 단 한해도 마이너스 수익을 기록한적이 없었으며 1987년을 제외하면 매해 벤치마크인 s&p500 지수를 능가하는 수익률은 거두었다 이러한 점에서 리치의 위대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피터린치의 경력을 보겠습니다
1944년 보스턴 출생으로 보스턴 대학과 펜실베니아 MBA 거진 전형적인 동부백인 상류층이었습니다.
어린시절 골프장 캐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손님들이 주고받는 투자 이야기를 통해 주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골프장에서 손님으로 만난 피델리티사장 설리반과 인연으로 피델리티에 입사 합니다. 1966년 피델리티입사 후 석유화학 금속분야 애널리스트로 격력을 쌓고 1977년 마젤란 펀드를 운용하는 펀드매니저로
피터린치의 성공신화가 시작됩니다.

참고로 그는 한국과 인연이 있는데요

1968년부터 13개월간 주한미군 ROTC 포병으로 한국에서 근무했습니다.

그 시절을 회상하며 한국에서는 주식 투자를 할 수 없어 주식 금단증상에 시달렸으며 그때마다 미국에 가서 주식매매를 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성공한 펀드매니저 린스는 1990년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이유로 46세에 은퇴를 선언합니다.

 

그리고 이듬해. 1991년 국내에서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이라는 린치의 책이 발간됩니다. 피터린치는 주식을 너무나 너무나 사랑한 일 중독자였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6시 45분에 출근해서 저녁 9시에 퇴근하고 주말에도 매주 출근하고 휴가중에도 회사에 주식매매를 지시하기도 하였습니다.
마젤란펀드를 운영하면서 1400개 종목을 했었고 펀드매니저로 15,000개 종목을 사고 팔았네요. 투자전략은 발로 뛴 투자였습니다. 적극적인 탐방과 기업 담당자 미팅을 통해 기업을 분석하고 종목을 발굴했습니다.


그럼 마젤란펀드 성공 스토리를 살펴보겠습니다.
1977년 마젤란펀드는 자산 $1,800에 소규모 펀드였습니다. 당시에는 주식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없어
펀드신규고객 가입이 중단된 상태였습니다. 린치는 당시의 시장 침체기가 본인에게 축복이었다고 말합니다. 시장이 좋지 않아. 실수라도 주목 받지 않았고 덕분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어 펀드매니저로 실력을 늘리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합니다.

그는 더 좋은 정보를 찾기 위해 매수와
매도를 반복하며 첫4년간 마젤란펀드 연간 회전율은 300%가 넘었는데요. 정신없이 삿다 팔았다는 반복합니다. 당시 린치의 전략은 보유한 주식보다 더 좋은 종목을 찾아다니는 공격적인 매매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사업 내용을 이해하기 쉬운 숙박 소비재 의류업종 중심으로 당신 매수 종목은 헤인즈 타코웰 같이 잘 알려지지 않은 저평가된 종목이었고 이 종목들을 통해서 5배에서 10배까지의 수익을 냅니다. 1981년 마젤란펀드가 일반인에게 판매 재개 되고 자금 유입돼자 린치는장기보유 하는 종목을 늘리게 됩니다.

82년부터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드는데 린치는 경기가 회복되면 미국인들은 자동차를 산다고 결론짓고 포드와 크라이슬러 같은 자동차주에 집중투자 합니다. 이유 경기가 회복되자. 린츠 예상대로 미국인들의 자동차 구매가 크게 늘었고 82년부터 87년까지 포드는 주가가 17배 크라이슬러는 50배 폭등하면 마젤란펀드 수익을 경인합니다. 1984년부터 린치는 해외투자의 시작합니다.

그는 해외투자를 통해
펀드에 14%가 해외 기업으로 치워 지는데요. 탐방을 통해. 저평가돼 있던 스웨덴의 볼보 일본의 도부철도 등을 발굴하고 해외투자를 통해 2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냅니다. 1987년 블랙 먼데이 당시에는 다우지수가 하루에 23% 하락하면서 엄청난 펀드환매 마젤란펀드 자산도 두 달 사이에 110억달러에서
72억 달러로 줄어듭니다. 린치는 이당시를 회상하며 폭락장에서는 오히려 사야하는 식이었는데 공포에 휩싸인 고객들의 환매요구로 주식을 싸게 팔아야 했던 것이 아쉽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는 고객 환매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주식을 대량 매도합니다. 그러면서도 87년 마젤란펀드는 2% 플러스 수익을 기록합니다.


린치는 블랙먼데이 폭락장에서 과다하락한 경기민감주와. 우량주를 매수 하는데 이때 매입한 GE ,코닥,필립 모리스, 페니메이등은 이후 시장이 회복하면서 주가가 폭등하고엄청난 수익을 냅니다. 피터린치가 1977년 마젤란펀드를 맏았을 당시 펀드설정 금액은 1800만달러 였으나 위입자금이 증가하면서
1990년 린치가 마젤란펀드 그만두기 직전에 펀드 자금은 140억달러로 13년간 770배 펀드에 커지며 스웨덴은 전체 GDP 보다 더 커진 상태였습니다.

피터린치가 마젤란펀드에서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종목은 부동산 모기지 업체인 페니메이였입니다. 이 회사는 정부보증과 세제해택 통해 급성장하며 주가가 4배 상승하고 린치는 이종목에서만 5억 달러에 수익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1999년 5월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마젤란펀드 성공을 뒤로하고 은퇴를 선언합니다.


그럼 피터린치의 투자철학을 살펴 보겠습니다.

개인투자자들에게 자기가 잘 아는 기업에 투자하라고 말합니다.가정주부라도 마트에서 잘 팔리는 제품을 보고 어떤 기업이익이 증가할지 예측할 수 있고 개인이라면 자신의 업무와 관련된 지식을 활용해 전문가보다 먼저 발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린치는 10루타라는 표현도 했는데요. 10루타란 열배의 수익을 내는 종목을 말합니다


투자자가 여러 종목에 분산투자 해도 그 중에서 하나 10루타 종목이 등장하면 계좌 전체 수익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또 린치는 peg라는 지표를 고안합니다. peg는 주가수익비율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것으로 린치에 전략은 저평가된 빠른 성장주을 찾는 것이 었고 이들이 PEG가 낮았습니다.

피터린치는 최고의 자리에서
은퇴하며 아내와 셋딸과 행복한 여생을 보내면서 투자자들에게 롤모델 제시합니다.
그는 4억달러 이상의 재산을 모은 슈퍼리치이기도 한데요.
매니저의 성과급과 책의 인세 그리고 개인 투자를 통해 엄청난 부를 이릅니다. 은퇴 후에는 린치 파운데이션이란 자산재단을 설립해. 사회공헌활동에도 전념하고요

아내 캐롤라인과 함께 린치 파운데이션을 통해 의료 교육분야 기부 활동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피터린치는 개인 투자자들로 약간의 노력과 원칙만 지키면 투자해서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보통사람도 두뇌의 3% 정도를 투자를 위해 사용하면 전문가보다 주식투자를 잘할 수 있다. 당신이 잘 알고 이해하는 기업이나 산업에 투자하는 식으로 자신의 강점을 활용 한다면 전문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피터린치 성공한 투자자의뿐만 아니라 유머와 통찰력으로 주식투자를
대중들에게 쉽게 소개한 주식 전도사였습니다. 뛰어라. 수익률과 인간적 매력으로 대중들의 지지를 받으며 지금까지도 월가의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은 책 월가의 영웅으로 알려진 피터린치를 통해서 주식을 배우는시간을 가져볼께요


피터린치는 월스트리트 사상 최고의 펀드 매니저로 뽑힙니다

1977년부터 1990년까지 13년간 피젤리티의 마젤란펀드를 운영하며 누적수익률 2700% 연평균 복리수익률 29.2% 기록하며
13년간 원금에 28배 수익을 거두며 투자업계의 전설로 등록합니다. 1977년 천만 원을 마젤란 펀드 투자 했으며 그 돈이 1990년 2억8천만원이 되어 있다는 것인데요.
피터린치가 13년간 마젤란펀드 운영하면서 단 한해도 마이너스 수익을 기록한적이 없었으며 1987년을 제외하면 매해 벤치마크인 snp500 지수를 능가하는 수익률은 거두었다
한 점에서 리치의 위대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피터린치의 경력을 보겠습니다
1944년 보스턴 출생으로 보스턴 대학과 펜실베니아 MBA 거진 전형적인 동부백인 상류층이었습니다.
어린시절 골프장 캐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손님들이 주고받는 투자 이야기를 통해 주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골프장에서 손님으로 만난 
피델리티사장 설리반과 인연으로 피델리티에 입사 합니다. 1966년 피델리티입사 후 석유화학 금속분야 애널리스트로 격력을 쌓고 1977년 마젤란 펀드를 운용하는 펀드매니저로
피터린치의 성공신화가 시작됩니다. 참고로 그는 한국인연이 있는데요
 1968년부터 69까지 13개월간 주한미군 ROTC 포병으로 한국에서 근무했습니다.


그 시절을 회상하며 한국에서는 주식 투자를 할 수 없어 주식 금단증상에 시달렸으며 그때마다 미국에 가서 주식매매를 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성공한 펀드매니저 린스는 1990년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이유로 46세에 은퇴를 선언합니다. 그리고 이듬해. 1991년 국내에서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이라는 린치의 책이 발간됩니다. 피터린치는 주식을 너무나 너무나 사랑한 일 중독자였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6시 45분에 출근해서
저녁 9시에 퇴근하고 주말에도 매주 출근하고 휴가중에도 회사에 주식매매를 지정되었습니다.
마젤란펀드를 운영하면서 1400개 종목을 했었고 펀드매니저로 15,000개 종목을 하고 팔았네요. 투자전략은 발로 뛴 투자였습니다.
 적극적인 탐방과 기업 담당자 미팅을 통해 기업을 분석하고 종목을 발굴했습니다.


 그럼 마젤란펀드 성공 스토리를 살펴보겠습니다.
 1977년 마젤란펀드는 자산 $1,800에 소규모 펀드였습니다. 당시에는 주식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없어
펀드신규고객 가입이 중단된 상태였습니다. 린치는 당시의 시장 침체기가 본인에게 축복이 없다고 말합니다. 시장이 좋지 않아. 실수라도 주목 받지 않았고
 덕분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어. 펀드매니저로 실력을 늘리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합니다. 그는 더 좋은 정보를 찾기 위해 매수와
 매도를 첫4년간 마젤란펀드 연간 회전율은 300%가 넘었는데요.  정신없이 살다 팔았다는 반복합니다. 당시 린치의 전략은 보유한 주식보다 더 좋은 종목을
찾아다니는 공격적인 매매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사업 내용을 이해하기 쉬운 숙박 소비재 의류업종 중심으로 당신 매수 종목은 헤인즈 타코웰 같이 잘 알려지지 않은
 저평가된 종목이었고 이 종목들을 통해서 5배에서 10배까지의 수익을 냅니다. 1981년 마젤란펀드가 일반인에게 판매 재개 되고 자금 유입돼자 린치는
 장기보유 하는 종목을 늘리게 됩니다. 82년부터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드는데 린치는 경기가 회복되면 미국인들은 자동차를 산다고 결론짓고 포드와
 크라이슬러 같은 자동차주에 집중투자 합니다. 이유 경기가 회복되자. 린츠 예상대로 미국인들의 자동차 구매가 크게 늘었고 82년부터 87년까지
포드는 주가가 17배 크라이슬러는 50배 폭등하면 마젤란펀드 수익을 경인합니다. 1984년부터 린치는 해외투자의 시작합니다. 그는 해외투자를 통해
 펀드에 14%가 해외 기업으로 치워 지는데요. 탐방을 통해. 저평가돼 있던 스웨덴의 볼보 일본의 도부철도 등을 발굴하고 해외투자를 통해 2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냅니다. 1987년 블랙 먼데이 당시에는 다우지수가 하루에 23% 하락하면서 엄청난 펀드환매 마젤란펀드 자산도 두 달 사이에 110억달러에서
 72억 달러로 줄어듭니다. 린치는 이당시를 회상하며 폭락장에서는 오히려 사야하는 식이었는데 공포에 휩싸인 고객들의 환매요구로 주식을 싸게
 팔아야 했던 것이 아쉽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는 고객 환매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주식을 대량 매도합니다. 그러면서도 87년 마젤란펀드는 2% 플러스 수익을 기록합니다.


린치는 블랙먼데이 폭락장에서 과다하락한 경기민감주와. 우량주를 매수 하는데 이때 매입한 GE ,코닥,필립 모리스 페니메이등은 이후 시장이 회복하면서
주가가 하고 엄청난 수익을 냅니다. 피터린치가 1977년 마젤란펀드를 맏았을 당시 펀드설정 금액은 1800만달러 였으나 위입자금이 증가하면서
1990년 린치가 마젤란펀드 그만두기 직전에 펀드 자금은 140억달러로 13년간 770배 펀드에 커지며 스웨덴은 전체 GDP 보다 더 커진 상태였습니다.
피터린치가 마젤란펀드에서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종목은 부동산 모기지 업체인 페니메이였입니다. 이 회사는 정부보증과 세제해택 통해 급성장하며 주가가 4배 상승하고 린치는
 이종목에서만 5억 달러에 수익을입니다. 그리고 1999년 5월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마젤란펀드 성공을
뒤로하고 은퇴를 선언합니다.
그럼 피터린치의 투자철학을 살펴 보겠습니다.
그런 개인투자자들에게 하시니 잘 아는 내일 투자하라고 말합니다.


가정주부라도 마트에서 잘 팔리는 제품을 보고 어떤 기업이익이 증가할지 예측할 수 있고 개인이라면 자신의 업무와 관련된 지식을 활용해 전문가보다
먼저 발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린치는 10루타라는 표현도 했는데요. 10루타란 열배의 수익을 내는 종목을 말합니다
투자자가 여러 종목에 분산투자 해도 그 중에서 하나 10루타 종목이 등장하면
계좌 전체 수익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또 린치는 peg라는 지표로 고안합니다. 피지는 주가수익비율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것으로 린치에 전략은 저평가된  빠른 성장주을 찾는 것이 없고 이들이 PEG가 낮았습니다. 피터린치는 최고의 자리에서
은퇴하며 아내와 셋딸과 행복한 여생을 보내면서 투자자들에게 롤모델 제시합니다.
그는 4억달러 이상의 재산을 모은 슈퍼리치이기도 한데요.
 매니저의 성과급과 책의 인세 그리고 개인 투자를 통해 엄청난 부를 이릅니다. 은퇴 후에는 린치 파운데이션이란 자산재단을 설립해. 사회공헌활동에도 전념하고요

아내 캐롤라인과 함께 린치 파운데이션을 통해 의료 교육분야 기부 활동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피터린치는 개인 투자자들로 약간은 노력과 원칙만 지키면 투자해서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보통사람도 두뇌의 3% 정도를 투자를 위해 사용하면 전문가보다 주식투자를 잘할 수 있다. 당신이 잘 알고
 이해하는 기업이나 산업에 투자하는 식으로 자신의 강점을 활용 한다면 전문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피터린치 성공한 투자자의뿐만 아니라 유머와 통찰력으로 주식투자를
대중들에게 쉽게 소개한 주식 전도사였습니다. 뛰어라. 수익률과 인간적 매력으로 대중들의 지지를 받으며 지금까지도 월가의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이상 피터린치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투자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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